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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서제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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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서제도의 부활?
  • 나병문 경영학박사
  • 승인 2019.06.1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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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문 경영학 박사
나병문 경영학 박사

음서제도의 부활?

‘기회의 평등’은 문명사회의 척도다

 

나병문 경영학 박사

 

음서제도란 고려·조선 시대에 있던 제도로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운 사람의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특별히 채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 당시에도 과거제도가 있어서 이 제도를 통하여 관리들을 선발했었다. 그러나 일단 관리 계층에 편입된 자들은 그들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계승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분적으로 관직을 세습할 수 있도록 음서제도를 만들었다.

 

최근 보도된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와 관련한 내용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노동조합이 개입되어 있다고 한다. 어쩌다가 볼 수 있는 드문 케이스라고 치부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11월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15개 대기업 노사가 정년퇴직자 등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하는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시정 조치 지시가 있은 후에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6개 대기업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기업들에 대해 강제로 단협을 폐기토록 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대하여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만약 고용세습 폐지를 거부하는 노조가 있다면 노조의 교섭 대표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기업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에 기업 2,769개의 노사 단체협약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 업무상 사고·질병·사망자 자녀에게 입사 시험 때 가산점을 주거나 우선 채용 또는 특별 채용 혜택을 주는 조항을 둔 기업 수가 694곳이었다고 한다. 가히 전국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막연하게 그런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기업들에서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것은 일종의 ‘신분 세습’이다. 현대판 음서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문명사회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대명천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정도라면 봉건적 잔재를 벗어던지지 못한 비문명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고용세습은 기회의 불평등이 가장 나쁜 형태로 나타난 현상이다. 젊은이들에게서 꿈을 빼앗는 일은 최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 시대에 비해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든 청년들에게 더 미안해진다.

 

고용을 세습하는 당사자는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있다. 반면에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는 가뜩이나 한정된 취업문이 더 좁아지게 된다. 기회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구직난에 잠 못 이루는 청년들에게 참으로 몹쓸 짓이다. 그들의 분노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른들의 무력감도 애처롭다.

 

적어도 내 자식에게만은 더 이상 무지와 가난을 대물림하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뼛골 빠지게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밤잠을 줄여가며 만든 돈으로 등록금과 학원 수강료를 대 주고 있는 서민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그들은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현실 속에 존재하리라고 믿고 자식을 한 단계 위로 올려보려고 현재의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그들의 꿈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저소득층에 머물며 살아가야 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이것이 현대판 신분 세습이 아니겠는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오늘도 수십만의 취업 준비생들이 도시락을 싸 들고 힘든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계속되는 낙방으로 좌절하는 그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분노가 모여서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번지게 된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희망을 상실한 개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목상의 ‘기회의 평등’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대한 보상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이제 이 땅의 주요한 세력 집단으로 커버린 노동계는 책임 있는 어른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폭력적 의사전달 방식과 투쟁 일변도의 모습은 커져버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노조가 관련된 고용 특혜가 있었다면 이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조직도 배경도 없다. 그들에게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빼앗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부와 노동계는 약자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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